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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꿀팁

익산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

by 니~킥 니~킥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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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니~킥입니다.

 

 

오늘은 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된 익산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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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사적 제150호)는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 역사 유적지구에 등재된 익산의 백제 시대 유적입니다.

 

미륵사지는 삼국사지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의 터로서 현재 미그사지에는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만 남아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복원과정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가 국보로 지정됐습니다.

 

익산 미륵사지는 밤이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 주제로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에도 선정된 바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역의 문화매력을 찾아내고 지역문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역의 명소, 콘텐츠, 명인 등을 로컬 100선(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했습니다.

 

익산의 미륵사지도 로컬 100선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륵사지 광장에서는 익산 천만 송이 국화축제가 분산 개최되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광장의 국화축제장에서는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을 낳은 한 익산 이사달 후예들의 석 조각품 야외 전시회 제3회 2023 돌빛 축제 정·소리가 개최되고 있으며 미륵사지를 빛내주고 있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란?

 

미륵사지는 고대 동아시아 최대 사찰 터 중 한 곳입니다. 미륵사지에 고고한 자태로 우뚝 서 있는 미륵사지 석탑은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항상 실리어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백제 시대 석탑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시기에 지어져 조선 시대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사찰로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여겨지는 큰 사찰이었습니다.

 

미륵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표지석과 표지판이 관광객들을 반겨주고 있습니다.

 

미륵사지에 들어서는 순간 미륵사지 규모에 깜짝 놀랄 수 있습니다. 미륵사지는 무려 1338만 4699㎡(약 413만여 평)으로 경주 황룡사지보다 2배 넓고, 경복궁보다 약 31배가 넓어 그 규모에 누구나 깜짝 놀랄 것입니다.

 

정문에서 바라보면 멀리 미륵사지 석탑과 복원된 동탑 그리고 당간지주와 연지가 보이고 넓은 잔디밭 뒤로 익산의 진산 미륵산이 미륵사지를 품고 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의 뒷산 이름이 지금은 미륵산이지만 예 산 이름은 용화산이었다고 합니다. 용화수 아래 미륵이 있듯 용화산 아래 미륵사가 있도록 배치한 것입니다.

 

익산 미륵사지가 입소문을 타고 주말에는 관광객들과 수학여행 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1974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발굴조사 결과 미륵사지의 가람 배치가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미륵사의 배치는 정림사와 왕흥사 등 다른 백제 시대 사찰의 1탑 1금당과는 달리 3탑 3금당으로 되어 있습니다.

 

서탑과 동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었으며 탑 앞에는 당간지주가 각각 서 있습니다. 서탑과 동탑 목탑 뒤로는 부처님을 모시는 서원 금당, 동원 금당, 중원 금당이 각각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당은 복도(회랑)로 구분되어 매우 독특한 가람 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바닥 마루의 습기에 대비하기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이는 온돌 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내 미륵사지 석탑 심주석 아래에서는 역사학자들이 예상했던 대로 대한민국이 깜짝 놀랄 만한 역사적인 유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바로 찬란한 백제문화와 역사의 정수이자 백제 시대 타임캡슐인 사리장엄구입니다.

사리장엄구와 함께 발굴된 사리봉영기에서는 미륵사지가 백제 무왕 시기 638년에 창건된 사찰이라는 절대 연도가 기록돼 대한민국이 떠들썩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사지 창건에 대한 설화가 나오는데, 서동이 백제 30대 무왕이 되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 미륵산) 아래에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가다가 용화산 아래 큰 못에 이르자 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수레를 멈추고 경례를 하였고, 이를 바라본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세우자고 하였으며, 왕이 이를 허락하자 지명 법사의 신력으로 하룻밤에 산을 무너트려 절터를 만들었고, 미륵 삼불과 탑 등을 3곳에 세우고 미륵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석탑과 동탑 아래는 당간지주가 각각  서 있습니다. 당간지주는 불교 사찰에서 깃발의 일종인 당간을 세우기 위한 지지대로 쓰이는 한 쌍의 돌기둥 같은 구조물입니다.

 

또한, 미륵사지 당간지주 아래에는 그 당시 연못이 각각 있는데, 미륵사지 석탑의 포토존으로 모든 여행자가 쉬어가며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남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 그리고 중앙 목탑

 

대한민국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서탑으로 동방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역사는 기록되어있습니다. 몇 번의 벼락음 맞아 탑의 서쪽 면이 파괴되고 일제 강점기 일제가 임시 조치로 콘크리트를 부어놓아 흉물상태로 서 있었습니다.

 

그 후 해체복원이 결정되었고 1998년 보수정비 준비과정을 거쳐 2001년부터 본격적인 해체와 복원에 들어갔으며, 2019년 20년의 보수 복원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일반인에 공개했습니다.

 

해체와 보수 공사 중 2009년에는 미륵사지 서탑 안에서 사리장엄구와 금판 모양의 봉안 기록이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된 것입니다. 사리병에는 연꽃, 당초, 인동초무늬가 정교한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고, 역사학자들은 백제금동대향로에 필적하는 백제 공예품의 걸작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탑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서탑과는 달리 미륵사지 동탑은 땅에 묻힌 기단부를 제외하곤 완전히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탑의 돌들만 소실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1970년대 들어 무령왕릉이 발견되면서 우리나라 고대 유적 정비가 시작됐습니다.

 

1974년~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미륵사지 조사과정에서 미륵사지 동탑 터를 발굴했습니다. 이후 동탑 복원이 여러 사정으로 지연되어 오다 1991년 다시 복원이 시작되어 1993년에 현재의 동탑이 복원 완료했으나 졸속 복원이라는 큰 비판 여론에 부딪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탑과 똑같은 탑으로 단정하고 주변의 흩어진 35개의 거무튀튀한 돌과 기계로 깎아 만든 화강암으로 서탑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결국, 미륵사지 서탑과의 부조화가 심하고 화강암 표면의 질감이 너무 매끈하여 부담스러운 동탑이 되었으며, 어느새 30년의 세월이 흘러 서탑과 동화되며 조화를 자연스럽게 이뤄가고 있습니다.

 

동탑과 서탑 사이 중원에는 목탑이 있습니다. 2022년 중원 목탑 발굴조사에서는 목탑과 서탑 간의 축조 선후 관계가 확인됐다고 합니다.

 

현재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19차 미륵사지 발굴조사로 목탑 뒤 중앙 금당지 발굴조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미륵사의 역사와 문화 나이가 백제 시대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유물과 자료 등이 발굴될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금당 옆으로는 회랑이 이어지는데, 회랑으로 모든 건물 영역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북쪽에는 불경의 설법, 강의하고 법회 같은 불교의식을 행하는 강당을 배치했으며, 강당의 북쪽 서쪽 동쪽에는 승려들의 생활공간인 승방을 두었습니다.

 

미륵사지에는 기와를 구웠던 가마터 2곳이 있습니다. 동탑 옆에는 고려 시대 가마터 흔적이고, 승방 뒤 오른쪽에는 조선 시대 가마터 흔적입니다. 미륵사가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사찰로 이용됐음을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이 가마에서 만든 기와는 미륵사 최고 뒤편에 있는 조선 시대 건물에 사용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가마터와 건물터가 있는 미륵사지 최 북쪽과 승방 앞에서 바라본 미륵사지 전경입니다. 미륵사지 규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륵사지 동서남북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그 규모는 백제 시대 최대 사찰이었음을 증명되고 있습니다.

 

서편 승방 바로 위 즉 조선 시대 건물지 아래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큰 우물터와 작은 우물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물터에서 내려오면 어린이박물관 입구의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석 부재 전시장도 미륵사지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익산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유적 중에서도 잘 알려진 보석 같은 유적입니다. 미륵사지에는 국립익산박물관과 어린이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륵사지에서는 미디어아트 페스타와 박물관을 품은 미륵사지 등 년 중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계속 열려 항상 시민들과 여행자들로 붐비는 익산의 대표 여행지입니다.

 

익산 미륵사지가 로컬 100선(지역문화매력 100선)에 선정됨으로써 수많은 여행자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등 익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여행하는 것도 백제 역사 여행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자료 = 문화체육관광부

 

 

 

 

그럼 여기까지 익산 미륵사지와 미륵사지 석탑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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